2010. 4. 10.

 

봄에게

 

김남조

 

1
아무도 안 데려오고
무엇 하나 들고 오지 않은
봄아,
해마다 해마다
혼자서 빈 손으로만
다녀가는
봄아,
오십 년 살고 나서 바라보니
맨손 맨발에
포스스한 맨머리결

정녕 그뿐인데도
참 어여쁘게
잘도 생겼구나
봄아,


2
잠시 만나
수삼 년 마른 목을 축이고
잠시 찰나에
평생의 마른 목을 축이고
봄햇살 질펀한 데서
인사하고 나뉘니
인젠
저승길 목마름만 남았구나

봄이여
이승에선 제일로
꿈만 같은 햇빛 안에
나는 왔는가싶어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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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10.

 

가족

 

용혜원

 

하늘 아래
행복한 곳은
나의 사랑 나의 아이들이 있는 곳 입니다.

한 가슴에 안고
온 천지를 돌며 춤추어도 좋을
나의 아이들.

이토록 살아보아도
살기 어려운 세상을
평생을 이루어야 할 꿈이라도 깨어
사랑을 주겠습니다.

어설픈 애비의 모습이 싫어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지만
애정의 목소리를 더 잘 듣는 것을

가족을 위하여
목숨을 뿌리더라도
고통을 웃음으로 답하며
꿋꿋이 서 있는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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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님 E-mail 주소를 남겨주세요.

메모지에 성함과 3인가족이라고만 적으시고 E-mail 주소를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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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10.

 

동행

이향아

강물이여,
눈 먼 나를 데리고 어디로 좀 가자.
서늘한 젊음, 고즈넉한 운율 위에
날 띄우고
머리칼에 와서 우짖는 햇살
가늘고 긴 눈물과
근심의 향기
데리고 함께 가자.
달아나는 시간의 살침에 맞아
쇠잔한 육신의 몇 십분지 얼마,
감추어 꾸려둔 잔잔한 기운으로
피어나리.

강물이여 흐르자.
천지에 흩어진 내 목숨 걷어
그 중 화창한 물굽이 한 곡조로
살아 남으리.

진실로 가자.
들녘이고 바다고
눈 먼 나를 데리고 어디로 좀 가자.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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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10.

 

4월의 시

 

김철기

 

산에는

땅의 입김 새벽이슬 먹고

새잎 실바람 타는 종달새에

내 눈 머문다

 

산비탈 오르는

발걸음 걸음마다 흐르는

땀방울은 여름인 듯하고

 

화들짝 놀란 진달래 꽃

곱디곱게 생생한데

노송의 솔향 사방으로 흩날린다

 

이 아름다운 세상

하얀 바람 흔들어 내 가슴 확 당긴다

나도 나서니

그대도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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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4.

 

봄이 오는길

 

 

김순희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하얀 새 옷 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

 

2010. 4. 4.

 

우리가 어느 사이에


용혜원

내 젊음을 모두 바쳐
그대를 사랑하여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연인들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의 깃발을
휘날리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의 사랑마저
애증으로만 남는다면
우리들의 삶은
고통의 눈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대화조차 어설프던
우리가
어느 사이에
그간 서로가 살아온
세월의 간격도 없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만 했던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들을
너무나 고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처음 느껴본
사랑의 그 감정을
오래도록 내 가슴에
간직하고만 싶습니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


2010. 4. 4.

 

 

김광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 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과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도 되고 명산이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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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4.

 

봄이 오는 소리

 

안숙현

사박사박 소곤소곤
또로록 툭툭
예쁜 꽃 요정들이
속삭이는 소리

빨리 일어나
맑고 따뜻한 햇빛에
일광욕하고 싶다고
맑고 투명한 이슬로
샤워하고 싶다고
꽃 요정들의
봄을 알리는 소리

코 간지러워
잎이 나고
귀 간지러워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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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4.

 

봄 꿈
강애숙

내 곁에 오세요
향기로운 미풍을 드릴께요
간지러봐요
웃음꽃이 피고 있쟎아요

내 곁에 오세요
달콤한 속삭임을 드릴께요
귀 기울여봐요
희망의 노래가 들리쟎아요

내 곁에 오세요
부드러운 입맞춤을 드릴께요
눈을 감아봐요
사랑의 기쁨이 있쟎아요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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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4.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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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7.

 

참된 친구

 

신달자

나의 노트에
너의 이름을 쓴다.

'참된 친구'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이건 내가 지은 이름이지만
내가 지은 이름만은 아니다.
너를 처음 볼때
이 이름의 주인이 너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손수건 하나를 사도
'나의 것'이라 하지 않고
'우리의 것'이라 말하며 산다.

세상에 좋은 일만 있으라
너의 활짝 핀 웃음을 보게
세상엔 아름다운 일만 있으라

'참된 친구'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넘어지는 일이 있어도
울고 싶은 일이 일어나도
마음처럼 말을 못하는
바보 마음을 알아주는
참된 친구 있으니
내 옆은 이제 허전하지 않으리

너의 깨끗한 손을 다오
너의 손에도
참된 친구라고 쓰고 싶다.
그리고 나도 참된 친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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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8.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김기남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 누구의 가슴 앞에서라도
바람 같은 웃음을 띄울 수 있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헤어짐을 주는 사람보다는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늘 들꽃 같은 향기로 다가오는
그런 편안한 이름이 되고 싶다

제일 먼저 봄 소식을 편지로 띄워 주고
제일 먼저 첫눈이 내린다고
문득 전화해서 반가운 사람
은은한 침묵의 사랑으로 서성이며
나도 몰래 내 마음을 가져가는 사람
아무리 멀어도
갑자기 보고 싶었다며 달려오는 사람

나도 누군가의 가슴에서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이름이고 싶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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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1.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유미성


술을 마시다 문득
목소리 듣고 싶어지는 사람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혼자 밥을 먹으며
그 쓸쓸함에 그리워지는 사람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그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은 사람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당신이 필요로 할 땐 언제나
당신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에게 그런 사람
꼭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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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14.

 


관찰 일기



김요섭

현미경으로 비춰 보았다
이슬
이슬 속의 꼭꼭 들어찬
하늘나라의 햇빛

관찰 일기에 썼다.
한 방울의 이슬은

수천 수만의 웃음이 모인
하늘나라의 햇빛방울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

2010. 3. 14.

 

 

자화상

두메솔 이재관

 

몽마르트 언덕에서 초상화를 부탁했더니

예쁜 영화배우가 미소 짓는다

그게 나냐,

 

자화상은 터치도 하기 전에 잔소리,

고치라고 잔소리,

담장 끼고 흐르는 개골창이 빠졌다

한가로운 비둘기와 수채 물은 빼고

한길 위 넘쳐흐르는 맑은 것을 넣어야지

물어 물어 산동네

여름날 장대비 그칠 때쯤

적삼 걷어붙인 그대 겹치게 그려야지

뭘 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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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14.

 

다 버리고 가라

 

김재진

설령 당신이
백송이 수선화를 선물 받는다 해도
그 누구도 진실로 사랑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가질 수 있는 것, 누릴 수 있는 것,
이룰 수 있는 많은 것들 쌓여 있다 해도
어느 것도 당신이 포기하지 못해 괴롭다면 무슨 소용인가.
뜻대로 되는 것과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사랑해야 할 것들과 사랑해서는 안 될 것들 사이에 끼어
당신의 마음이
한치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어질 때
채울 수 없을 뿐 당신의 삶은 텅 비어 있다.
설령 당신의 하루가
당신을 필요로 하기보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람에 의해 가득 찬다 해도
누구에게도 당신의 따뜻한 마음 낼 수 없다면
그 무슨 소용인가.
어느 날 당신이 가까운 이로부터 상처 나거나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어 괴로워질 때
모든 것을 버리고 가라.
전쟁같이 하루가 힘겹고 외로울 때
다 버리고 한 번쯤 자신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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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13.

 

작은 시작

 

박종화

한 알의 씨앗이 있음에
저 아름드리 나무도 있다는 걸
우리는 가끔씩 잊고 살지
어쩌다 한번쯤 생각이 나도
몰래 지우려 하지
모래알처럼 초라해 보이는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주위를 둘레둘레 눈치 보기도 하지

세상이 만들어 논
거대한 나무숲에 앉아
제 멋대로 키를 재고
제 멋대로 큰 숲이 되려 하다보면
소중한 씨앗의 흔적은 사라져 버리기도 하지

나무는 씨앗으로 자라는 것
나무도 사람도 저 아름드리가 되고 나면
오늘의 초라함들도 살포시 웃어 줄 것을
애써 지우려하지
한심한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깨끗이 지우려하지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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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13.

 

행 복

 

김재진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나무처럼
사람들 속에 섞여 고요할 때
나는 행복하다

아직은 튼튼한 두 다리로 개울을 건너거나
대지의 맨살을 발바닥으로 느낄 때
만지고 싶은 것
입에 넣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하나 없이 비어 있을 때
행복하다

가령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어깨에 닿고
한 마리 벌이 꽃 위에 앉아 있는
그 짧은 세상을 눈여겨 보라

멀리 산 그림자 조금씩 커지고
막 눈을 뜬 앵두꽃 이파리 하나 하나가
눈물겹도록 아롱거려 올 때
붙잡는 마음 툭, 밀어 놓고 떠날 수 있는
그 순간이 나는 행복하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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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13.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이해인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 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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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13.

 

사랑의 우화

 

이정하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이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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