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고주서씨가 지난 달 30일 강원도 영월읍 영월우체국 1층 전시실에서 자신이 심고 가꾸고 있는 무궁화나무 꽃과 함께 찍은 ‘한반도지형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은 우리나라의 형상을 쏙 빼닮은 한반도지형이 있어 생긴 지명이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형태도 닮았거니와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처럼 강물이 삼면을 휘감아 돌고 있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곳이 아니라 천연 그대로다. 18년 동안 이곳을 찍어온 사진작가 고주서(63)씨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며 <영월 한반도지형 사진전>을 열고 있다.
지난달 30일 영월우체국 1층 전시실에서 고씨를 만났다. 그는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한다는 뉴스를 보고 전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2000년 ‘한반도지형’ 관통도로 막으려
생업도 잊고 날마다 ‘나홀로 출퇴근’
국회 전시 반향으로 도로 노선 ‘수정’
“이제는 영월군에서도 ‘잘한 일’ 이해”
18년간 관광객 50만명에 무료 기념사진
‘평창 남북 단일팀’ 성공기원 사진전
그는 거의 날마다 출근하듯 한반도지형을 오르내리고 있다. 오전 9시30분쯤 도착해 오후 4시30분까지 관광객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관광객은 주말에 더 많으니 휴일도 없다. 2000년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필름카메라여서 사진을 인화해 우편으로 보내주는 일까지 했다. 디지털카메라가 생긴 뒤로는 이메일로 사진 파일을 보내주거나 관광객들의 스마트폰으로 대신 찍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50만명쯤에게 사진을 찍어줬다. 물론 무료다.
왜 이런 봉사를 할까? 고씨는 “한국인이니까”라고 짧게 답했다. 영월 토박이인 그는 중·고교 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좋아했다. 공고를 나와 뜻하지 않았던 대학에 가서 고시 공부를 했다. 독서광이어서 1년이면 몇 백 권을 보곤 했다. 어느날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책과 다른 매력을 발견했다. 사진은 현장이 있었다. 바람 한 줄기, 풀 한 포기가 ‘나의 스승’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30대 초반 본격적으로 사진에 뛰어들었다. “뭐든지 대충하는 성격이 못 되어서” 완전히 매달렸다.
“처음에는 5일장을 다니면서 추위 속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하나라도 더 팔려는 할머니들의 간절한 모습을 봤다. 한 25년간 장터의 삶을 찍었다. 영월 지역의 단종제, 정선아리랑제 같은 축제도 지켜봤는데 요즘은 이벤트회사가 장악해 지역 특성을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영월 단종제 국장 재현 행렬에 옛날 옷을 입었으나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에 하얀 마스크를 하고 등장하더라. 이건 아니잖아?”
결정적으로 고씨가 영월 지킴이로 나선 계기는 ‘동강댐 건설 논란’이었다. 1998~99년 매일 아침 산에 올라가 동강 일대를 사진으로 찍었다. “댐을 짓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2000년 들어 동강댐 건설계획은 백지화되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영월군이 한반도지형을 관통하는 관광도로를 낸다는 계획이 들려왔다. “우리나라가 분단된 것도 억울한데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통일 한반도지형을 훼손할 수 없다. 막아야 한다.” 그때부터 그는 카메라와 필름을 챙겨들고 한반도지형으로 갔다.
주변에선 그의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생업도 없이 한반도지형만 찍는 고씨를 가족들은 격려해주었다. 2001년 결혼한 부인은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부친도 돌아가실 때까지 응원해줬다. “한반도지형 도로공사를 막겠다. 부끄러운 한국인이 되지 않겠다”는 그에게 “네가 한국인이다. 지금은 욕을 먹을지 모르지만 나중엔 절대 그렇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떳떳한 일이니 해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는 자비로 한반도지형 사진 8만 장을 인화해서 서울과 강릉, 영월 등의 버스터미널에 배포하고 운전기사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결혼식 때 영월문화예술회관에서 한반도지형 사진전도 함께 열었다. 2002년엔 지인의 도움으로 서울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도 사진전을 열었다. 여야의원 100여 명이 그의 뜻에 호응했다. 드디어 영월군에서 한반도지형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포기하고 노선을 다른 쪽으로 틀게 되었다. “그때는 군에서나 지역에서난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지만, 몇년 전 군청 관계자가 ‘잘 막아줬다’고 털어놓더라.”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의 사진작가들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반도지형 일대에 무궁화나무 1000여 그루도 심었다. 그때부터 나무 관리도 오롯이 그의 몫이 됐다.
“이번 사진전이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면 좋겠고, 올림픽 경기장마다 한두장이라도 한반도지형 사진을 전시하고 싶다.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선수들의 등 뒤로 통일된 한반도지형 사진이 걸려있으면 근사할 것이다.”
영월/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