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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江의 한반도 평화가 강물처럼

[문화일보 2003-01-03 10:30]

강원도 산간지방에 대설주의보. 강원도 영월군 서면 옹정리 선암 마을을 찾은 지난 12 26일은 영하 10도를 밑도는 차가운 이었다. 매섭게 날이 바람이 강원도의 산과 강을 휘감고 있었 . 들판에는 겨우내 쌓였지만 아무도 밟지않은 눈이 끝간데 이어져 있었다.

이따금 이름 모를 산새들이 겨울 강물 위로 날아 오르고, 추수가 끝난 수수밭에는 참새떼만 분주했다. 중앙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황둔을 거쳐 주천을 지나면서부터 물어물어 찾아들어간 선암마 . 마을 아래쪽 은사시나무가 하얗게 늘어선 서강(西江) 굽이 따라 돌아 가파른 벼랑 위에 매어놓은 밧줄을 타고 아슬아슬 종만봉 위로 올랐다.^ “원래 이름이 없던 봉우리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1999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처음 발견했던 이종만씨의 이름을 따서 봉우리 이름을 지은거래요.”

3대에 걸쳐 이곳 선암마을을 지켜온 서현석(40)씨는 밧줄을 타고 절벽을 오르는 동안 이곳 한반도 지형에 들어서려던 쓰레기소각 장과 도로건설 반대운동 도중 사망한 이종만씨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않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지키 려다 사고로 숨진 이씨에게 그는빚이 많다 했다.

봉우리에서 내려다본 서강의 모습은 그대로 폭의 그림이었다. 앞이 트인 봉우리 정상에서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서 하나 합치는 서강의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솟은 힘줄이 그대로 껴졌다. 굽이쳐 휘돌아가는 서강을 따라 만들어진 지형은 한반도 모양 바로 그대로였다. 서쪽은 야트막한 모래벌이 이어지고 쪽은 벼랑을 이루는 모습까지도 같았다. 서강의 한반도에는 남북이 따로 없고, 갈등과 대립이 없고 오로지 평화의 기운만 서려 있을 뿐이었다. 서강은 이곳을 굽이쳐 내려가다가 영월읍에 닿아 동강을 만나 함께 남한강 줄기가 된다.

얼마전 첫얼음이 얼었을 마을 주민들이 모여 얼음 고기잡이 했지요. 이곳에서 제일 깊은 곳이 다섯길 정도인데 워낙 물이 맑아서 밑바닥까지 훤하게 보여요. 얼음 밑의 물고기를 쫓다가 팔뚝만한 잉어나 눈치를 비닐하우스 파이프로 만든 창으로 찍어 잡지요.”

강변에 바짝 붙어 지어진 서씨의 앞에는 선암마을과 강건너 밤뒤마을을 이어주는 섶다리가 지어져 있다. 섶다리란 버드나무 베어다가 다릿목을 만들고 위에 솔가지를 얹은 뗏장을 덮어 만든 다리다. 그나마 여름철에 물이 지면 떠내려 가버리 통에 가을철에 지어서 이듬해 봄까지 쓴다.

여름이면 방과후에 강물에 멱을 감다가 해가 지면 모깃불 피워 놓고 평상에서 잠이 들었지요. 겨울이면 밧줄로 나룻배를 강을 건너 10리를 걸어서 학교에 다녔어요. 지금 되돌아보면 자연과 함께 커갔던 날들이었죠.”

서씨는 고교졸업 친구들을 따라 서울생활도 해봤고, 결혼 에는 면소재지인 신천으로 나가살기도 했다. 그러다 고향마을이 그리워 8년전 집을 짓고 이곳 선암마을에 정착했다.

선암마을에는 해가 빨리 졌다. 해가 짧은 겨울철이라지만 서쪽의 봉우리 뒤로 해가 넘어가자마자 삽시간에 사위가 어둑어둑해 졌다. 관솔가지를 지펴 아궁이에 불을 때는지 밥짓는 연기가 캐하게 번지고 멀리서 개짖는 소리와 함께 창호지 뒤편에서는 럭이는 노인들의 기침소리가 이어진다. 10가구가 사는 단출한 . 그나마 서씨 형제가 사는 2가구를 빼놓고 8가구는 모두 육순 넘은 노인들만 집을 지키고 있다. 해가 갈수록 빈집이 늘어나 있다.

선암마을 초입의 박춘호(70)할아버지 집에서 더운 저녁 밥상을 받았다. 반찬이래야 밭에서 뽑아 담근 고들빼기 김치에 김칫독에 막꺼낸 김장김치와 콩나물 무침뿐. “(반찬) 없어서 어쩌 ….” 김옥순(68)할머니가 부엌으로 가더니 직접 메밀묵을 따뜻한 물에 담가 참기름과 참깨를 뿌려 내온다. 입안에 감기 진짜메밀묵 맛이 인정만큼이나 구수하다. 황토 흙을 이겨붙인 위에 벽지를 바른 벽채에는 깜찍한 표정의 손자들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장작불의 온기가 퍼지면서 아랫 구들장은 설설 끓고, 윗목에는 할머니가 정성껏 다듬어 빚었 메주가 이불을 덮은 익어가고 있다. 찬바람이 휘잉~ 창호 지를 울리며 지나간다.

고생? 말도 . 어찌 많은 날들을 살아왔으까. 진주에서 집와서 48년동안 여기서 살았는데 하루도 빼놓고 밭에 나가 일하믄서 저기 서강에서 물길어다가 밥짓고 빨래하고 칠남매를 키워왔지.”

한국전쟁이 나던 해에 가족들이 부산으로 피란갔다가 아랫방을 군인에게 사글세를 김할머니가 이곳 강원도 산골마을로 집오게 계기가 됐다. 아랫방에 세든 군인이 바로 박할아버지 였고 김할머니는 당시 혈기왕성한 청년이던 박할아버지의 은근한 시선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첨에는 강원도가 어디 붙었는지도 몰랐지. 20리길을 걸어서 곳에 오는데 시할머니에 시어머니에그러고는 밤마다 눈물이었 .”

그렇듯 힘들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김할머니는 이곳이 좋다. “공기도 좋고, 물도 좋지. 도회지의 아들 딸네 집에 가면 당최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빨리 여기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어. 그저 정직하게 붙여 먹고 사는 나는 좋아.”

오랫동안의 투쟁 끝에 고향마을의 소중한 자연을 지켜낸 서씨와 스무살에 시집와서 50 가까이 이곳에서 살아온 김씨 할머니 . 그리고 나머지 8가구 선암마을 주민들은 새해 첫날 따뜻한 그릇을 앞에 놓고 모여 앉아 한해의 소원을 빌겠다고 했다.

투쟁과정에서 실형을 언도받아 집행유예 기간이라 지난 대선에 투표도 못했다는 서씨는 자신과 함께 실형을 받은 주민 3명이 해에는 사면복권되기를 바랐고, 정직하게 땅만 바라보고 사는 민들이 잘사는 세상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가까워 있기를, 주민들이 온몸으로 지켜낸 소중한 자연이 지켜 지기를 기원했다. 김씨 할머니는 그저 이곳 선암마을에서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과 아직 결혼을 하지않은 7남매중 막내아들 올해는 제짝을 찾는 것이 새해소원이라고 했다.

한반도 마을주민들의 소망은 서강의 흐르는 물처럼 순박한 것이었다. 선암마을 주민들이 한반도 지형의 허리를 관통하는 로건설 강행 시도를 맨몸으로 당당하게 막아섰듯, 서강은 유구 세월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평화와 통일로 가는 역사의 앞에서 북한핵이나 미국의 전쟁위협이 얼마나 헛되고 무력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같았다. /영월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kr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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