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yuhan-kimberly.co.kr/issue/webzine/5_1_202.asp





강원도 영월은 자연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생태계의 보물창고다. 읍의 동쪽으로는 매서운 산세를 끼고 웅장한 아름다움을 지닌 동강이 아우라지의 전설을 간직한 채 흐르고 있고, 서쪽으로는 오밀조밀한 산세와 더불어 느릿하면서도 부드럽게 흐르는 서강이 단종의 한을 달래며 읍을 감싸안고 있다. 어름치, 쉬리 등이 살고있는 1급수가 흐르는 두 강은 영월 남쪽에서 만나 남한강이 된다.

서강의 아름다움은 동강 못지 않다. 강원도 땅을 흐르는 물길답게 구절양장으로 굽이치며 곳곳에 절경을 만든다. 그 중에도 서강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있는 옹정리 선암마을은 최근에야 그 비경을 세상에 드러낸 서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선암마을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영월에서도 보기 드문 ‘깡촌’이다. 한때는 30여가구에 달했지만 1970년대부터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가면서부터 마을은 점차 세월 속에 잊혀져갔다. 주민이라곤 고작 9가구에 30여명이 전부이다. 담배 한 갑 살만한 구멍가게조차 없는 궁색한 처지이다.

몇년 전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비가 내려 물이 불면 나룻배로는 맥을 못 춰 아이들은 등교를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한겨울에도 도시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이 마을을 찾아오고 있는 형편이니 그 본디 이유인즉 선암마을이 한반도 지형을 꼭 빼어 닮은 `‘한반도 마을`’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부터이다.

일단 이 마을에 들어서니 넓은 밭뙈기에 앙상하게 남은 수수줄기가 한겨울 산골마을의 스산함을 더해주었건만, 그런 기분도 잠시, 그 말 그대로 밭고랑 끝머리에 있는 느티나무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한반도를 빼다 박은 지형이 발아래 펼쳐진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아~” 하는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여기가 한반도와 닮은 지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어요. 그저 경치 좋은 곳쯤으로 생각했지요.”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마다 않고 전망대까지 안내를 맡은 서인석 씨(42)의 설명이다. 4대째 토박이인 인석씨는 형 석구 씨(45)와 동생 현석 씨(40)네와 함께 칠순 노모를 모시고 선암마을 강가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종만봉이라 이름지어진 전망대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영락없는 한반도 모양의 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지형형태뿐 아니라 지형의 특징도 똑같아 동쪽은 가파른 절벽에 물이 깊은 동해안이며, 서쪽은 완만한 벌판에 수심이 얕아 서해안을 연상케 한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강줄기는 S자형의 산자락을 에돌며 한반도를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 강물 아니면 먹지 않아. 마을 사람들도 죄다 강물을 그대로 떠다 먹어.”

이 마을에서 56년 간 살아온 이상남(72) 할머니가 산에서 내려온 둘째 아들 인석 씨와 내게 냉수를 건내며 밝게 웃는다. 할머니는 칠순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피부가 곱고 행동이 정정하시다. 지금도 매일 서강에서 식수를 손수 길어다 먹을 정도이다.

“이 강은 나와 함께 평생을 같이 했어. 내가 이웃마을에서 16살 때 시집 올 때도 연지 곤지 찍고 이 강을 건너왔지.”

반백 년이 넘는 세월동안 날마다 강에서 물을 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이상남 할머니처럼 이곳 주민들은 평생을 강과 함께 살아왔다. 선암마을 주민들에게 서강은 삶의 탯줄이다.

하지만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선암마을은 처음에는 유쾌하지 못한 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 1998년 8월 영월군은 강 상류인 서면 덕상리에 쓰레기매립장을 설립하려고 하였다. 이에 선암마을 주민들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불과 2킬로미터 떨어진 강 상류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설 경우 매립장에서 나오는 침출수가 지하로 스며들어 자신들의 식수원과 농작물 오염이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군청의 결정에 분노하였고 즉각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이웃 광전리 주민들과 함께 매립장 후보지에 콘테이너 박스를 세워놓고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말도 말아요. 2년 동안 농사를 하나도 짓지 못했어요. 이 강이 오염되면 우리 모두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수도권 시민들도 죽잖아요.” 당시 이장을 맡아 시위를 이끌었던 서현석 씨(42). 매립장 반대운동을 이끌면서 주민들을 선동하여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45일간 구속되기도 한 그이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들 했지요. 하지만 이 강을 지키기 위해 전 주민이 똘똘 뭉치니까 하늘이 감동을 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수도권 시민들의 무관심과 언론의 냉대로 꺼져가던 매립장 반대투쟁의 불씨가` ‘서강의 한반도’ 발견으로 서서히 반전되기 시작했다. 1999년 12월 첫눈이 오던 날 ‘서강의 한반도’가 발견된 것이다.

매립장 반대운동을 펼쳐온 사진작가 고주서 씨(46) 와 옹정리 주민 이종만(2000년 3월 사망)씨가 이 마을 언덕에서 서강이 선암마을을 시계 방향으로 U자형으로 휘감으면서 연출한 한반도 지형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대책위원회는 즉시 이를 사진으로 담아 한반도를 살려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나섰다.

대책위가 제작한 이 서강의 한반도 사진은 약국, 시외버스, 음식점등 도처에 부착되면서 영월군민 사이에 매립장에 대한 반대여론이 급격히 확산되었고 영월군의 일부 공무원들도 입지 선정이 잘못됐다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년 7개월에 걸친 주민들의 투쟁은 영월군청이 2001년 1월 10일 매립장 계획 백지화를 발표하면서 막을 내렸다.

“동강은 온 국민의 도움으로 지켜냈지만 서강은 우리 주민들의 힘으로 지켰어요. 여성과 노인이 대부분인 주민들의 애향심과 단결력이 이룬 승리입니다.”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현석 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반도 지형을 처음으로 발견한 이종만 씨가 투쟁이 한창이던 지난 2000년 3월 매립장을 오가던 중 논길에 넘어져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람 아니었으면 서강 지키기 운동은 불씨도 지피지 못했을 겁니다. 금방이라도 웃으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그가 나타날 것 같습니다.”며 현석 씨는 한숨을 내쉰다. 한반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종만봉’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이런 연유였다.

통일된 한반도 모양의 남산을 부드럽게 감싸안고 흐르는 서강 위로 또다시 눈발이 휘날린다.



글과 사진 김선규/문화일보 사진부 기자


찾아가는 길
영종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첫 번째 나오는 신림인터체인지로 빠져나와 402번 지방도를 탄다. 주천과 신천리를 지나서 영월방면으로 약5분정도 가다가 영월 책 박물관을 바로 지나면 선암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 약2킬로미터 오르면 오른쪽에 다시 '한반도 지도 선암마을' 표지판이 보이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마을까지는 약 1킬로미터. 마을 입구에서 흙으로 만든 건조장을 지나가면 단종이 쉬었다가는 큰 느티나무가 있다. 여기가 전망대가 있는 종만봉으로 오르는 산길의 출발점이다.
유한킴벌리 l 다양한 제품을 소개합니다 l 필요한정보를 드립니다 l 함께나누는 공간입니다 l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