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13.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이채


나는 늘 여름에만 바다에 갔었다
싱그런 바람이 좋고
넘실대는 파도가 좋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백사장에 누워
바람에 실려오는 푸른 이야기를 했었다

어느 해인가
우연히 겨울 바다엘 가게 되었다
아직 군데 군데
여름이 두고 간 흔적이 남아 있었고
바람과 파도는
조금씩 조금씩 그 흔적을 지워가고 있었다

춥지만은 않았다
햇살이 찬바람 사이로 내리고
두 뺨엔 보드란 온기가 스며 들었다
몸을 펴고 가슴을 열고
겨울 바다를 걸었다

빈배와 빈배가 물살에 부딪치고
어디론가 떠나지 못한 낙엽이
바람의 끝을 잡고 그 사이로 떠 다녔고
잔 물고기의 꼬리가
은빛 햇살에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파도가 쓸고 간 백사장은
다듬질한 삼베처럼 정갈했고
건너편 푸른 솔가지에서
산까치의 낭낭한 울음소리가
파도에 부서지며 하얗게 실려왔다

바람과 파도와 빈배만 남겨진
모두가 떠나고 비워진 자리
겨울바다는 홀로
남겨진 흔적을 지워가며
그렇게 추운 겨울을 나고 있었다

바다처럼
빈배처럼
그래 그렇게 사는거야
침묵의 가슴으로
부딪치며

바람과 파도가 되어
바다를 가르며
지워가며
또 지워가며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Posted by 영월서강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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