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3.
그 길은 아름답다
신경림
산벗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책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담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렸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 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렸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을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 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뿔, 창작과 비평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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